아케메니드와 사사니의 관계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요새 잉여짓을 좀 하고 있는데, 마침 Šahrestānīhā ī Ērānšahr와 Kârnâmag î Ardashîr î Babagân이라는 두 텍스트를 접해 읽다 보니 알렉산드로스에 관해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좀 뜯어와봤습니다.
Šahrestānīhā ī Ērānšahr는 6~8세기 정도에 쓰여진 일종의 지리 문서(?)입니다. Kârnâmag î Ardashîr î Babagân은 아르다시르 1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다룬 글이구요. 둘 다 짧은데다가 역사적 사실과 신화가 뒤섞여 있습니다만 그들 자신의 기록이라는 점이 중요하죠.
텍스트 출처들
12) šahrestān ī marw ud šahrestān [ī] harē gizistag skandar ī hrōmāyīg kard.
12) The city of Marv and the city of Herāt were built by the accursed Alexander the Roman.
마르브와 헤라트가 각각 알렉산드리아 마르기아나/아리아나를 기원으로 한다는 얘기는 위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란인들도 그리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칸다하르 역시 대표적인 "알렉산드리아" 중 하나로 얘기하는데 이 글엔 칸다하르는 안 나오는군요.
여튼 그건 그거고, 여기서는 재미있게도 "skandar"를 "로마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주받을 놈이라는 수식어까지 덧붙여서 말이지요. 그럼 이 양반이 왜 저주받을 놈인가?
5) ud pas gizistag *skandar sōxt ud andar ō drayāb abgand.
5) And then the accursed Alexander burnt and threw it into the sea.
Šahrestānīhā ī Ērānšahr의 첫부분은 선지자 조로아스터가 성스러운 아베스타를 쓴 경위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저주받을 skandar라는 놈이 그걸 불태우고 바다에 내버렸다는군요.
영문 번역자가 달아 놓은 주석 중 분다히쉰에도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서술이 있습니다.
Bundahišn XXXIII.14:
pas andar xwadāyīh ī dārā ī dārāyān aleksandar kēsar az hrōm dawārist ō ērān-·ahr āmad dārā šāh ōzad ud hamāg dūdag ī xwadāyān moγ-mardān paydāg ō ērān-šahr ābaxšīnēd ud was marag ātaxš afsārd ud dēn ī māzdēsnān ud zand stād ō hrōm āmad ud abestāg suxt ud ēran-šahr pad nawad xwadāy baxt:
"다라 왕의 치세에 로마의 카이사르인 알렉산다르가 이란으로 쳐들어와서, 다라 왕을 죽이고 지배자들과 성직자들의 가족들을 보이는 대로 없애버렸으며, 수많은 불꽃들을 꺼뜨렸고, 마즈다를 섬기는 종교와 (아베스타의) 기록을 빼앗아 로마로 보내 아베스타를 불태우고 이란을 90개의 왕(국)으로 쪼개놓았다."
로마로 가져갔느냐, 바다로 던졌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알렉산드로스를 사악한 악당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알렉산드로스를 aleksandar라고 썼군요? 위에서는 skandar라고 썼는데 말입니다.
53) šahrestān ī gay gizistag *aleksandar ī flīpus kard.
53) The city of Gay was built by the accursed Alexander, the son of Philip.
Šahrestānīhā ī Ērānšahr에도 알렉산드로스를 aleksandar라고 쓴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뒤에 플리푸스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의 기본 구성이 도시 x는 z의 아들 y가 건설했다. 하는 식이기 때문에 저렇게 쓴 것이고, 적어도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이름이 필리포스라는 것은 알았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Kârnâmag î Ardashîr î Babagân에도 등장합니다.
(전략) 아룸(Arum) 사람인 알렉산더가 죽은 뒤, 이란에는 200하고도 40명의 왕들이 있었다. (중략) 그는 (왕인) 다랍의 아들 다라이의 후손이었는데, 사악한 알렉산더의 치세에 다랍의 후손들은 먼 곳에서 쿠르드인 양치기와 함께 떠돌며 살았다.
아룸이라는 지명은 로마를 연상시킵니다. 위 글들에서는 로마를 hrōm 이라고 썼었죠. 게다가 이란이 수많은 작은 왕들의 땅으로 갈라졌다는 설명, 알렉산드로스 이전 왕들의 이름(다라-다랍,다라이)도 비슷합니다. 아르다시르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라 그런지 아베스타 얘기는 없지만, 어쨌든 알렉산드로스의 지배를 사악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자하크(Zohak), 투르의 프라시압(Frasiav of Tur), 아룸의 알렉산더의 폭정에 마침내 신께서도 노하시어..."
자하크는 유명한 악룡 아지 다하카를 말하는 것이고, 프라시압이란 이후 샤나메에도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로써 이란의 적대국가인 투란의 왕으로 나오지요. 알렉산드로스도 이 신화적인 존재들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Šahrestānīhā ī Ērānšahr에도 이들은 Aži Dahāg, Frāsiyāk 등으로 언급되며, evil이나 accursed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여기에는 신화적 인물들 뿐만 아니라 사산 왕조의 실제 적들, 즉 여러 Xāgān(하간? 카간? 카안?)들, 카이사르(kēsar)가 언급됩니다만 얘네한테는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는 않거든요.
이처럼 사산 왕조 시대 사람들은 알렉산드로스를 이란의 정치와 종교를 무너뜨린 로마 출신의 사악한 악당으로 여겼습니다. 다만 이란 사람들은 왜 수백 년 전 그리스-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를 그들의 당대 적이었던 로마와 연결시켰을까요? 그리스나 로마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파악할 정도로 그들을 잘 알아서? 아니면 수백 년 전 적들의 상세한 역사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서? 아케메네스 시절 그리스인들은 확실히 Yauna로 인식했는데, 그 인식이 사산 왕조 때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것인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