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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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 이란의 왕관들

다음, 네이버 카페에 올렸던 글.


롬 토탈워 1 바바리안 인베이전 이후로 근 10년만에 사산 왕조 이란이 다시 토탈워 게임의 장에 등장하는 것을 기념해서, 여러분께 사산조 이란의 왕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왜 왕관이냐? 사산 왕조의 왕관은 일단 장식이 화려할 뿐더러, 역대 황제마다 왕관의 모양이 다릅니다.

게다가 이 친구들이 워낙 문헌 사료를 남기는 데 관심이 없었던 데다, 중동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헬게이트이기 때문에 그나마 있던 문헌 자료들도 1500년의 세월 동안 다 날라가 버려서 -.- 현재 사산 왕조 시대에 대한 연구는 금석문 분야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새 황제가 즉위할 때마다 새 황제의 얼굴을 동전에 박아서 찍어내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역대 황제들의 다양한 왕관 형태가 오늘날까지 비교적 많이 보존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문외한도 알아보기 쉽죠. ㅋㅋㅋ

이 글에서는 우선 왕관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과 그 유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역대 황제들의 왕관을 쭉 훑어보고자 합니다.


이 견본(?)은 샤푸르 2세의 주화입니다. 우선 머리 위로 쓴 성곽 형태 테두리의 관이 보이구요. 뒤통수에 두 가닥으로 늘어뜨린 리본 같은 게 보이는데, 머리를 빙 둘러 묶은 끈입니다. 이 끈을 다이아뎀(Diadem)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관 위로 뭔가 크고 둥근 물체가 있는데, 이걸 코림보스(Korymbos)라고 합니다.


정면에서 두상을 보면 이렇게 됩니다.



다이아뎀(Diadem) - 다이아뎀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헬레니즘 군주들이 착용하면서 이란 지역에 처음 알려졌고, 아르사케스 왕조(파르티아) 왕들이 이를 따라하면서 사산 왕조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다른 것 아무것도 없이 머리 위에 끈만 둘러 묶는 형태였는데, 파르티아 중기 이후로는 끈 위에 관을 쓰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2세(261-246 BC)와 파르티아의 미트라다테스 1세(171-138 BC)의 주화에 나타난 다이아뎀.



아르타바누스 3세(1세기 말)와 아르타바누스 4세(3세기 초)의 주화. 다이아뎀이 점점 두꺼워지고, 뒤로 내려뜨린 부분도 길어집니다. 사족으로 아르타바누스 4세의 경우 왕조 말기의 혼란기라 그런지 주화의 질이 상당히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코림보스(Korymbos) - 코림보스는 왕관 안쪽, 머리 위에 달린 풍선 같은 장식입니다. 이는 왕관 착용자의 머리카락을 묶어 올려서 머리 위에 둥그렇게 만드는 것인데, 동그랗게 꼰 머리카락 다발들을 다시 둥근 뭉치로 만드는 형식과 그냥 둥그렇게 뭉친 다음 비단 주머니를 씌우는 형식이 있습니다. 위의 샤푸르 2세 왕관은 후자의 형식이죠. 하지만 그 샤푸르 2세 견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머리 위에 코림보스를 얹고도 왕관 옆과 뒤로 상당한 양의 머리카락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 사산조 중기 이후로는 코림보스가 아예 머리에서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를 보면 코림보스를 전부 착용자 본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건 아니고 조선 귀부인들이 머리에 얹는 가채처럼 가발로 만든 것 같습니다. 사산조 말기를 보면 장식이 점점 화려해지면서 코림보스가 사라지는 양상도 보입니다.

코림보스의 유래는 파르티아 중기-말기 귀족들의 헤어스타일, 그리고 인도 불교의 부처님 머리스타일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사산조는 파르티아의 계승국가인 동시에 박트리아, 아프간, 신드 지역을 공략하면서 북인도의 월지계 불교 왕조인 쿠샨 왕조의 예술 양식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파르티아 왕 볼로가세스 5세(2세기 말)의 주화에 나타난 머리 장식. 머리에 다이아뎀을 동여맨 뒤 머리카락은 다시 3개의 구형 뭉치로 묶었습니다. 저 풍성한 옆머리(?)들은 사산 왕조의 황제들에게도 상당 부분 계승됩니다.


쿠샨 왕조의 왕 카니슈카(1세기 말-2세기 초)의 주화. 뒷면(오른쪽)에 새겨진 붓다 입상에서 머리 위에 묶인 머리카락 뭉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르다시르 1세와 파르티아군의 전투를 다룬 피루저버드(firuzabad)의 암벽 부조에서 아르다시르 1세의 상체 부분만 잘라 놓은 사진입니다. 크게 휘날리는 리본 형태의 다이아뎀과 마찬가지로 크게 휘날리는 코림보스를 볼 수 있습니다.


관(Crown) - 사산조 초기에는 아직 왕관에 특별히 정해진 형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도 나오겠지만 아르다시르 1세의 주화를 보면 파르티아식의 높은 관을 쓴 모습이 많습니다. 다만 아르다시르 1세 때부터 이미 성곽 모양의 테두리를 가진 둥근 관 형태의 왕관이 나옵니다. 이후 테두리의 장식 모양이 달라지거나 윗부분이 좀더 높아지는 등의 변화가 생기지만, 기본적으로는 머리 위에 둘러쓰는 챙 없고 둥근 모자 형태가 왕관의 기본이 됩니다. 초기에는 코림보스가 사용자의 머리카락을 직접 사용하거나, 혹은 외관상 사용자의 머리에 직접 연결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왕관 윗부분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기에는 코림보스가 왕관에 별도의 장식으로 달리게 되면서 완전히 막힌 모자 형태가 됩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성곽 모양의 테두리 장식 왕관은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쓰였던 것입니다. 도시를 둘러싼 성곽을 형상화하며, 그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베히스툰 암벽 부조를 통해 그 왕관의 형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사산조 초기 왕들 역시 인근 지역에 부조를 남겼으므로 그 영향은 확실합니다. 다만 바흐람 1세의 빛살 장식처럼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바흐람 1세의 왕관을 다룰 때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히스툰(Behistun) 부조에 묘사된 다리우스 1세와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의 금화.




1. 아르다시르 1세 (재위 224-242)


아르다시르 1세의 경우 이제 막 새 왕조를 개창한 참이라 아직 새로운 왕관에 대한 전통을 확립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띕니다. 첫 번째 주화는 재위 초창기로 추측되는데, 파르티아 양식의 높은 관을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래처럼 관이 아예 없고 다이아뎀과 코림보스만 갖춘 형태도 있으며, 성곽 모양의 테두리가 있지만 그 테두리가 다른 것보다 훨씬 높은 왕관 등이 있습니다.



2세기 경(정확한 연대 확인 불가) 파르티아의 페르시스 지역 분봉왕이었던 마누체흐르의 주화. 위의 아르다시르 1세 왕관과 마찬가지로 둥근 보석들(진주?)과 초승달 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후라 마즈다(오른쪽)로부터 다이아뎀을 수여받는 아르다시르 1세(왼쪽)의 부조. 둥근 모자 위에 커다란 코림보스가 얹혀 있고 뒤통수에 다이아뎀의 리본이 내려오는 형태로 묘사되었는데, 이것이 이후 사산조 초기~중기 왕관의 기본 양식이 됩니다.



2. 샤푸르 1세 (재위 242-270)


샤푸르 1세 시대가 되면 아르다시르 1세 말기에 형성된 다이아뎀+둥근 모자+코림보스에 각 황제마다 특별한 테두리 장식으로 왕관을 구성하는 양식이 확정됩니다. 실제로 샤푸르 1세 이후 한 황제의 시대에 주조된 주화들은 조폐 장소, 시각에 따른 몇 가지 디테일의 차이를 빼면 거의 생김새가 비슷해집니다. 샤푸르 1세의 경우 테두리 장식을 성곽형 장식으로 골랐습니다. 위 사진에 나온 아후라 마즈다의 왕관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만 성곽의 요철이 훨씬 크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족으로 주화의 양식도 통일됩니다. 앞면에는 우측을 보고 있는 황제의 옆얼굴을 새기고, 뒷면에는 가운데에 불의 제단을 새기고 양 옆에 사제들이 서서 지키는 그림을 새깁니다. 테두리에 새기는 명문 역시 "마즈다 숭배자, 신성한 xx, 이란(과 비이란)의 왕 중의 왕, 신의 후손" 으로 고정됩니다. 물론 황제에 따라 명문이 좀 달라지기도 하지만 기본 양식은 거의 유지됩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항복을 받는 샤푸르 1세. 코림보스가 매우 크다는 점을 빼면 위 주화와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파르티아 기병과 싸우는 페르시아 왕족(샤푸르 1세?)을 묘사한 쟁반. 여기 나온 코림보스, 그리고 앞서 피루저버드 부조에 나온 아르다시르 1세의 코림보스를 보면 바로 위에 있는 샤푸르 1세의 코림보스와는 생김새가 좀 다릅니다. 저쪽은 매끈한 풍선이나 주머니 같은 반면, 이쪽은 구불구불 꼬인 파마머리 같죠. 전자가 착용자의 머리카락 혹은 가발을 넣어 크게 부풀리고 고정시킨 형태라면, 후자는 착용자의 머리카락을 직접 왕관 위로 틀어올려 구불거리게 묶은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예시로 든 장면들이 둘 다 싸움 장면인데, 실제로 싸움 장면을 다루는 유물/유적에서 후자가 자주 보이기 때문에 후자의 스타일은 전시에 주로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위 유물들을 토대로 고증된 샤푸르 1세의 피겨.



3. 호르마즈드 1세 (재위 270-271)


이 양반은 별로 특별할 게 없습니다. 재위 기간이 워낙 짧아서 자기 왕관 디자인할 시간도 없었나 봅니다.



4. 바흐람 1세(재위 271-274)


이 양반도 재위기간이 짧기는 마찬가지지만 다행히 자기 왕관 디자인할 시간은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양반은 왕관에 뻗어나가는 태양빛 모티프 장식을 했습니다. 아마 그의 이름 때문인 것 같은데, 바흐람(베레트라그나)는 승리의 신으로써 마찬가지로 승리를 관장하는 광명의 신 메흐르(미트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와 비슷한 태양 광선 모티브를 주화에 사용한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쿠샨 왕조의 왕 후비슈카(2세기)의 주화. 뒷면에 미로(miiro, 미트라의 다른 이름)이 태양 광선 모양의 후광을 달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사산 왕조는 쿠샨 왕조 예술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의 주화. 이 양반은 아예 태양 광선 모양의 관을 쓰고 있습니다. 전술했듯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들은 대부분 다이아뎀 하나만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안티오코스 4세 관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름이 '미트라다테스'였다는 점, 그가 왕이 되어 사용한 별명이 '에피파네스(신의 현신)'라는 점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5. 바흐람 2세(재위 274-293)


바흐람 2세의 왕관은 날개 장식입니다. 날개는 승리를 상징하는 주요 모티프 가운데 하나로 쓰였으므로, 바흐람 2세 역시 자기 이름에 따라 디자인을 결정한 것 같습니다. 바흐람 2세 시대는 샤푸르 1세의 전성기를 벗어나 이란이 대 로마 전쟁에서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더욱 승리의 상징성이 강하게 제기되었을 것입니다.



6. 나르세 (재위 293-302)


나르세는 원래 황제이던 바흐람 3세를 몰아내고 제위를 찬탈한 인물입니다. 그의 왕관 장식은 나무 잎사귀인데, 이는 물과 생명의 여신인 아나히타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찬탈자의 입장이다 보니 기존 교단의 주류인 아후라 마즈다 대신 과거 사산 가문의 신이기도 했던 아나히타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 같습니다.



나르세가 자신의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긴 paikuli 부조. 여기서도 아나히타 여신에게서 다이아뎀을 받고 있습니다.



7. 호르마즈드 2세 (재위 302-309)


호르마즈드 2세 역시 바흐람 2세가 쓰던 날개 모티프를 재탕했습니다. 왠지 그대로 따라하기는 꺼림칙했는지 아예 앞쪽에 새의 머리까지 달아 놨습니다. 전술한 대로 새/날개는 승리의 모티프인데, 호르마즈드 2세 당시 이란은 로마와의 전쟁에 연패한 황제 나르세의권위가 크게 실추되고 귀족들의 발호가 심화되는 등 외우내환의 위기 상황에 있었습니다. 나르세로부터 양위를 받은 호르마즈드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8. 샤푸르 2세 (재위 309-379)


위에서 이미 견본으로 한번 보여드린 샤푸르 2세입니다. 사실 이 양반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증조할아버지인 샤푸르 1세의 왕관 디자인을 재탕했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나라가 워낙 막장이니 제일 잘나가던 샤푸르 1세 시대처럼 돼 보자는 희망사항도 있었을 것 같네요. 어쨌든 태어나자마자 황제가 된 샤푸르 2세가 워낙 걸출한 인물이라 이란은 위기를 벗어납니다.



9. 아르다시르 2세 (재위 379-383)


여러 모로 쉬어가는 코너. 재위 기간도 짧고, 그나마도 조카(샤푸르 2세의 아들)에게 양위하고 물러난 황제입니다. 왕관 디자인도 특별할 게 없습니다.



10. 샤푸르 3세 (재위 383-388)


쉬어가는 코너 2. 삼촌한테 물려받은 조카도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왕관을 보자면 둥근 모자 형태에서 사다리꼴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 눈에 띄는군요.



11. 바흐람 4세 (재위 388-399)



이번 아틸라 토탈워에 나오는 턱 아래가 민둥민둥한 환관놈 황제입니다. 슬슬 창의력이 떨어졌는지 기존의 성곽형, 날개형 디자인을 반반 섞었습니다. 코림보스가 점점 작아지고 다른 장식이 붙기 시작합니다.



12. 야즈데게르드 1세 (재위 399-420)



앞선 황제들의 무성의한 왕관 디자인에 뭔가 느끼는 게 있었는지, 야즈데게르드 1세는 뭔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합니다. 코림보스는아예 하늘에 떴고, 테두리에 장식을 붙이는 대신 모자 앞에 초승달 모양 장식을 붙였습니다. 가느다란 초승달 문양은 이란 신화의 달의 신 마(Mah)를 상징합니다.



다시 등장한 쿠샨 주화. 카니슈카(1세기 말 ~ 2세기 초) 시대의 주화로 뒷면에 달의 신 마(여기서는 마오Mao)가 초승달 모티프를 달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13. 바흐람 5세 (재위 420-438)


성곽형 테두리 장식이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선제 야즈데게르드 1세 시대의 영향인지, 코림보스는 더 높이 올라가고 초승달 장식이 그 밑에 자리잡았습니다. 동쪽에서 에프탈 등 유목민족의 침입이 본격화되는 시기라 그런지 주화 질이 영 좋질 못합니다.



바흐람 5세가 사냥하는 모습을 새긴 은 접시. 주화에서 축약되어 나타난 왕관의 실제 사이즈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런 거 쓰고 사냥은 못 하겠죠.



어떤 왕을 묘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흐람 5세를 전후로 보이는 사산 왕조 중기 왕관의 특징을 보여 주는 입상.



14. 야즈데게르드 2세 (재위 438-457)


선제인 바흐람 5세의 디자인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전쟁하느라 바빠서 새 왕관 디자인할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다만 코림보스가 점점 작아지고, 아예 별도의 봉에 매달려 있는 것까지 그려 놨습니다.



15. 페로즈 1세 (재위 459-484)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날개 모티프가 또 나왔습니다. 아예 황명인 페로즈 자체가 중세 페르시아어로 승리를 뜻합니다. 물론 현실은 최초로 적에게 포로로 잡힌 이란 황제지만요 ㅠㅠ 왕관을 볼작시면 코림보스는 더 높이 올라가고, 왕관의 테두리 장식이 크게 작아진 대신 날개 장식이 희한하게 앞뒤로 붙었습니다.



16. 카바드 1세 (재위 488-496, 498-531)


사산 왕조의 역사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왕이지만, 이번 글의 주제인 왕관과 주화에 있어서는 쩌리입니다. 에프탈에게 황제가 포로로 잡히고, 군사력은 궤멸되고 기근까지 겹쳤는데 에프탈에 조공까지 바쳐야 하는 데다 마즈다크교의 반란 등 나라가 그야말로 개판 난장판이었죠. 그 결과 주화의 퀄리티가 저 모양입니다. 왕관의 디자인도 날개가 사라진 것을 빼면 페로즈 1세의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주화의 사방에 달과 별 장식이 붙기 시작했다는 점이 있네요. 터키



17. 호스로 1세 (재위 531-579)


부친과 마찬가지로 호스로 1세 역시 사산 왕조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만, 그 오랜 재위 기간과 신장된 국력에도 불구하고 주화 퀄리티는 여전히 똥망입니다. 이전 세대의 추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 정도만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코림보스는 점점 더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이건 유물/유적은 아니고 테헤란에 조성된 호스로 1세 기념물입니다. 다만 여기 고증된 호스로 1세의 왕관은 지금까지 유물들에서 보이는 특징과는 다소 다릅니다. 물론 왕관-초승달 장식-코림보스라는 구조 자체는 맞지만 초승달 장식이 달린 형태, 그리고 모자의 형태가 다릅니다. 물론 샤푸르 3세의 경우도 있듯 저런 형태의 사다리꼴 모자가 안 쓰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리 자주 쓰인 형식은 아닙니다.



deviantart의 amelianvs 씨가 그린 호스로 1세 그림. 야즈데게르드 1세, 카바드 1세, 호스로 1세의 주화에 나타나는 왕관의 특징을 잘 묘사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시기의 코림보스는 초기의 머리카락 넣어 만들던 물건과 완전히 동떨어진 형태로 변했습니다.



18. 호르마즈드 4세 (재위 579-590)


주화의 퀄리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변화를 알 수 있는데, 점점 하늘로 올라가던 코림보스가 드디어 구형 모양조차 포기했다는 것, 그리고 높이가 낮은 모자에 장식을 달던 기존 왕관들과 달리 높이 자체가 높은 관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높은 관은 사산 왕조 초기부터 신하들의 복장으로 자주 등장했지만, 왕관으로 쓰인 예는 거의 없습니다.



19. 호스로 2세 (재위 590-628)



그전까지 거의 바뀌지 않던 주화 양식은 여러 가지로 바뀌었지만, 왕관의 형태 자체는 대부분의 주화에서 일치합니다. 성곽 테두리, 앞에 달린 작은 초승달 장식, 한 쌍의 거대한 날개 장식, 봉에 매달린 커다란 초승달과 별 장식이 보입니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점은 저 초승달과 별 장식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주화의 사방 장식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들이라, 저게 왕관의 부속물인지 주화의 장식인지 헷갈린다는 겁니다. 물론 초승달 장식은 예전부터 있었긴 한데, 문제는 코림보스 자리를 완전히 대체한 저 별이죠.



타키 보스탄의 암벽 부조. 아나히타 여신과 아후라 마즈다 신 사이에 서있는 호스로 2세를 묘사한 것입니다. 주화에 나온 것과 거의 같은 왕관 장식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아무래도 큰 초승달 위에 달려 있는 게 코림보스 같아 보입니다.



사냥하는 호스로 2세를 묘사한 도금 쟁반.



심지어 이런 유물도 있습니다. 크기가 좀 크지만 어쨌든 초승달 장식 두 개, 양 옆의 날개라는 패턴은 동일합니다. 문제는 왕관이 이 따위로 크다 보니까 사람 목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산조 말기 황제들은 접견실의 옥좌 위에 황금 사슬로 왕관을 매달아 놓고 썼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런 '걸어놓는 왕관'을 접견실 외에도 여기저기 설치해 놓았다고 하니 그 사치성을 알 만하죠.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지

호스로 2세 사후 그나마 성인 남성 후계자였던 카바드 2세가 1년만에 급사한 뒤로 사산 왕조는 공중분해됩니다. 대 로마 전쟁의 참패로 국력 자체가 크게 기울었고, 호스로 2세를 암살하고 즉위한 카바드 2세가 경쟁자들을 전부 숙청하면서 황실에 남아난 사람이 없게 되죠. 이후 황제들은 황가가 아닌 귀족들, 혹은 그들이 내세운 여자나 어린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면서 개판 난장판이 됩니다. 그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651년 사산 왕조의 멸망이죠. 이 시기 왕관의 형태는 대부분 호스로 2세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처럼 사산 왕조의 왕관은 역대 황제들의 이름, 혹은 즉위 당시의 상황에 따라 여러 신화적 모티프를 차용한 독자적인 디자인을 보여 줍니다. 물론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구성 요소와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점이 나름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보는 아틸라 TW의 사산조 대장.

...누구세요?





참고 자료

장영수, 페르시아 사산조 왕관의 연구, 복식 60-6, 2010
Elsie H. Peck, Crown ii. from the seleucids to the islamic conquest, encyclopaedia iranica, 1993
http://www.coinproject.com/
이미지 출처들은 일일이 적기 귀찮네요 뭐 리포트 쓸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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