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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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e 모드의 사산조 페르시아 유닛 번역 게임

(고용량 스크린샷 다수)


지금까지 모드, 정규 타이틀 통틀어 토탈워 시리즈에서 사산조 이란에 관련된 것으로는 단연 최고라 할 만합니다.

이 모드 팀이 현재 아틸라 TW 기반으로 만들고 있는 fall of eagle 모드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쪽에 이란이 추가되려면 꽤 기다려야 할 듯.

프리뷰 원본 주소

접견 홀 안에는 세계의 위대한 군주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세 개의 옥좌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셋은 각각 로마의 황제, 중국의 황제, 튀르크의 카간을 가리킨다. 그들 모두 언젠가 사산 제국의 황제에게 복속될 것이므로, 그들을 위해 준비된 자리라는 것이다. - Robert Irwin, Islamic Art In Context: Art, Architecture and the Literary World



로마의 적들 중 사산조 페르시아만큼 강력하고 오래 간 자들은 없었습니다. 카르하에 전투의 비극은, 로마-페르시아 전쟁 동안 있었던 수많은 패배와 불운에 비하면 그저 일시적인 실패에 불과합니다. 로마의 군대가 여러 차례 궤멸되었고, 부와 영토, 위신을 잃었으며 황제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습니다. 물론 암늑대의 후손들은 모욕과 부상을 받을 때마다 되갚아 주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사산조 페르시아 역시 그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상대였습니다. 과거 로마의 갈레리우스가 샤한샤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 주고, 그의 짐과 가족을 전리품으로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로마가 그와 같은 승리를 다시 거두는 데는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 헤라클리우스의 시대까지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역사적 의의는 단순히 로마의 군사적 라이벌이라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중동 역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만큼 후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경우는 많지 않으며, 고대 바빌로니아의 영광이나 이슬람 초기에 구축된 종교적 원칙들 정도가 견줄 만합니다. 유럽에서 팍스 로마나의 이상이 그러했듯이 사산조의 왕권, 정의와 질서에 대한 기억, 자부심은 중동 문화의 이상적인 (혹은 이상화된) 모델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들, 바그다드의 칼리프들, 그리고 여러 튀르크 술탄들이 사산조 페르시아의 궁정 의례를 따랐으며,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의 기병 전통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랍, 튀르크 기병들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보병
(Paigān, Payādagān)


'동방의 야만인 무리'를 가리키는 진부한 수사적 표현들은 역사 기록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보병 부대에 대한 널리 알려진 이미지들은 프로코피우스가 기록한 다라 전투(530년) 전날 밤 벨리사리우스의 연설에서 잘 나타납니다. "잡일을 하거나 학살당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초라하고 한심한 겁쟁이들의 무리." 하지만 이 표현들은 명백한 사실과 근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헤로도토스적 서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가깝습니다. 소수의 잘 훈련된 그리스인(이후의 로마인, 십자군, 서유럽인)들이 노예나 다름없는 동방의 대군에 맞선다는 내용이죠. 비슷하게는 '폭력과 약탈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북방의 헐벗고 원시적인 야만인들'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편견들은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기마술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보병은 보조 전력에 불과했으며, 아케메네스 왕조 후기부터 중동 지역은 항상 그런 민족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보조'라는 것이 곧 '쓸모없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5세기 이전까지 로마군에서 기병은 항상 중장보병의 보조 전력에 불과했고, 실제로 몇 차례 졸전하는 모습(스트라스부르, 아드리아노플)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쓸모없다거나 완전히 무력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산조의 보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Paighān-i Ramān
(파이거니 라먼, 평민 보병)

"그들의 보병이란 것들은 전부 하찮은 농노 무리에 불과하며, 전장에서 하는 일이라곤 성벽 밑에 굴을 파고 전사자의 물건을 약탈하며 군인들의 시중을 드는 것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은 적을 위협할 만한 어떤 무기도 갖지 못하고, 다만 거대한 방패 뒤에 숨어 적의 공격을 피할 뿐이다." - Procopius, De Bell, 1.22 - 1.30

프로코피우스의 이 서술은 최소한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서부 지역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급히 징집된 이 민병대에 한정한다면 맞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살고 있던 마을이나 도시에서 끌려온 이 병사들은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면 급조된 창과 나무 방패 정도밖에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들을 끌고 온 게 황제의 명령을 받은 관리이든, 혹은 그 휘하의 어떤 귀족 봉신이든 말입니다. 상급자를 위해 전장에 나가 일하고, 싸우고, 죽는 것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싸우러 간다기보다는 죽으러 간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사산조의 영주들은 이 징집병들을 주로 위험한 상황에 쓰일 소모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전선 유지 (그것도 짧은 시간)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값싸고 머릿수가 많으며, 이들이 버텨 주는 동안 더 중요한 병사들이 쓸모없는 소모전에 휘말리지 않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Kamāndarān-i Ramān
(카먼더러니 라먼, 평민 궁병)

"한편, 높은 토산이 빠른 속도로 쌓이기 시작하고, 공성전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심각해졌다. 우리 병사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황제가 보는 눈앞에서 싸우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눈에 띄어 포상을 받고 싶어했고, 눈에 잘 띄기 위해 투구를 벗고 싸웠다. 하지만 맨머리로 전장에 나선 이들은 숙련된 적 궁병들의 쉬운 표적이 되었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0.11.12

궁술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일개 평민조차 활을 쏠 줄 안다면 스스로를 귀족으로 여겼습니다. 이들 역시, 잘 해봐야 마을의 파트타임 민병대 소속이고 최악의 경우 강제 징집된 이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활을 쏘는 데 필요한 기술은 아무것도 모르는 비숙련자가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같은 평민 징집병이라도 궁수의 중요성과 유용함은 오합지졸 창병 무리와는 격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 궁술의 자부심에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민병대 수준에 불과하며, 군대나 왕실 궁병들에게 필요한 장비, 훈련, 규율은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궁술은 사산조의 군사적 승리에 있어 필수 요소입니다. 활과 화살만으로 적을 무찌를 수는 없지만, 갑옷 입은 이란의 기사들이 적을 쳐부수기 쉽도록 충분히 약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아군의 방패벽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거나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는 한, 이 병사들은 그들의 '체급 이상의 펀치력'을 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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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병(levy)'이라는 표현이 다소 오해의 여지를 낳을 수도 있는데, 이 궁병들은 당신 부대의 주력이자 다수를 차지하는 병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징집병"은 훈련받지 않은 오합지졸의 의미보다는 하스타티나 호플리타이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군대에 완전히 매여 있는 정규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대와 완전히 동떨어진 인간도 아니라는 겁니다.




Mardān-i Kof
(마르더니 코프, 산악 척후병)

"이 지역의 대부분은 비옥하지만 북쪽의 산악 지대는 춥고 험준하며, 카두시, 아마르디, 타피리, 퀴르티, 그리고 그 외의 비슷한 족속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호전적인 유랑민들인데, 자그로스 산맥과 니파테스 산맥이 이 부족들을 흩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페르시스의 퀴르티, 마르디(혹은 아마르디라고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아르메니아 지역 사람들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카두시인들은 아리아니인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숫자의 보병을 가지고 있으며, 투창을 매우 잘 던진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는 모두 기병이 아니라 보병으로 싸운다." - Strabo, Geographica, 11.13.3 - 11.13.4

이란 북서부 지역 주민들에 대한 스트라본의 묘사는 이란 고원 내의 다른 산악 지대 거주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톨리아의 이사우리아인들, 고대 헬라스의 아이톨리아인들, 이베리아인들, 기타 수많은 산악 지대 거주민들의 경우도 특별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고지대인들은 이란의 잘 정비된 거대한 정원 근처에 자라난 잡초 같은 존재들입니다. 거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서로 쉽게 전쟁을 벌였으며 때로는 필요에 의해, 혹은 관습적으로 허약하고 부유한 저지대인들을 약탈했습니다. 뛰어난 투창 실력과 산악지대를 누비는 빠른 발을 가진 이들은 강력하고 민첩한 경보병으로 활약합니다.




Šubānān
(슈버넌, 양치기들)

"A.D. 409년의 법은 모든 curialis, plebius, 혹은 소유자에게 자기 자녀를 양치기에게 맡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C. TH. 9.31.1). 이 법을 어기는 자는 곧 '도적떼와 관련 있는 자'임을 자백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으로 양치기들은 기병대와 마찬가지로 기동성이 뛰어났으며, 이 시대에는 양치기는 말을 탔든 타지 않았든 간에 latrones(도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 A Roman Villa and late Roman Infant Cemetry에서 F.E. Romer의 장, 474페이지

상기한 인용문은 로마 제국 말기 이탈리아 지역에서 악명을 떨친 양치기들을 묘사한 것이지만, 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일반적인 경향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 치는 가나안인들을 증오 섞인 경멸로 대했고, 이는 대부분의 농경 사회들이 목축민들에 대해 갖는 인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양치기들은 오랫동안 그 초라한 삶을 넘어선 권력과 왕위에 대한 상징으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히브리의 다윗 왕, 로마의 로물루스와 레무스, 페르시아의 아르다시르 1세가 그러합니다. 대부분은 신화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양치기들에게는 그들의 초라한 몰골에서 상상하기 힘든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문명 사회의 안락함을 벗어난 거친 삶, 양을 노리는 야수와 인간들을 상대로 한 투석구와 각종 무기 기술의 단련을 통해 그들은 늑대처럼 사나운 인간이 되었습니다. 문명화된 사람들이 보기에는 양심까지 늑대 수준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교외 지역을 배회하는 이 늑대 같은 자들은 이탈리아에서도 큰 위협이 되었지만, 광활한 초원이나 열사의 사막, 험준한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이란에서는 문제가 훨씬 심각해집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봉급과 적에 대한 약탈 권리의 약속을 통해 이 사회의 위협요소들을 약간이나마 통제할 수 있습니다.

로마 측 기록은 보병이든 기병이든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기술에 대해 명백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병사들은 활, 투석, 투창에 모두 뛰어났습니다. 중장기병의 돌격을 제외한다면, 투사 무기야말로 로마인들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투석구는 역사 기록에서 활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전투에서 투석병들이 날린 탄환이 비처럼 쏟아졌다는 기록은 많습니다. 궁병들과 마찬가지로 투석병들은 전열의 보병들에 비해 높은 평가와 보수를 받았습니다. 도시의 성벽, 험준한 고지대나 숲에 배치된 투석병은 막강한 캐터프랙트조차 무릎꿇게 만들 수 있습니다.




Bandagān-i Āzādān
(반데거니 어저던, 귀족의 사병/예속민)

"...보병들은 무르밀로처럼 무장했으며, 수많은 종자들처럼 명령을 따랐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3.83

율리아누스의 메소포타미아 침공 당시 귀족 기병들의 뒤를 따랐던 이 '종자'들은 별다른 훈련도 받지 않고 끌려와 창과 방패만 지급받은 징집병들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무르밀로 같은' 병사들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용병, 제국과 그 변방(아르메니아 혹은 엘부르즈 지역)의 고지대에서 징집된 병력, 가난한 하급 귀족 혹은 부유한 평민, 혹은 이란 귀족들의 사병들일 것입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를 포함한 여러 기록을 통해 이들이 어느 정도 훈련받고 규율을 갖췄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 막강한 로마 군단의 공격을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고, 전열의 가장 중요한 중앙 부분을 맡길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로마 군단병과 맞먹을 정도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 메디아, 알바니아 혹은 엘부르즈 지역 보병들이 가진 군사적 역량과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결국 다른 보병들과 마찬가지로 전선에서 적과 소모전을 벌이면서 이란의 기사들이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그나마 평민 보병들에 비해 장비와 훈련 면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살아남아 승리의 과실을 취할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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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켈리누스가 쓴 '무르밀로 같은'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실제 무르밀로 검투사들의 의미는 물론이요 그의 다른 서술에서 비슷한 용례를 찾음으로써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마와 알레만니족의 전투를 다룬 서술에서 암미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병사들은 빼곡하게 밀집하여 단단한 전열을 이루었다. 마치 탑처럼 자기 위치를 굳건히 사수하며 더욱 용감하게 전투를 재개했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무르밀로처럼 자신을 방어했고, 광분하여 날뛰느라 훤히 드러난 적들의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14.49

무르밀로 검투사(http://www.kron.it/img/wips/AR3NA/Mirmillone_wip_41.jpg)들은 기본적으로 군단병, 혹은 투레오스/스쿠툼과 칼을 사용하는 보병들을 양식화한 형태입니다. 구부러진 직사각형 방패와 짧은 칼,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투기장 전용 갑옷을 착용합니다. 쓸모없는 장식들을 제외한다면, 갈레리우스의 아치(http://i.imgur.com/LFapTjX.png)나 두라-에우로포스의 벽화(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1/DuraSyn-NB1-Eben_Ezer_battle-The_Ark.jpg)에서 묘사된 보병의 형태와 매우 유사합니다. 마르켈리누스의 로마군에 관한 서술은 무르밀로의 전투 방식이 조심스럽고 전략적이며 구부러진 스쿠툼을 이용하는 방식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사산조의 보병에 대한 그의 서술은 무르밀로의 장비를 연상시키며, 여기에 창이 더해진다고 해도 크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입니다. 

게임플레이적 요소에서, 그리고 아두르바다간과 아르메니아 보병의 가치와 중무장한 이란 창병에 대한 의존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유닛은 유닛 모델에서 40%정도만 갑옷을 갖춘 경무장 검병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갑옷 비율은 로마 보조병 유닛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Paighan-i Gund
(파이거니 군드, 군단 보병)

"그리고 날이 밝자, 갑옷 입은 병사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고, 군대가 밀집대형으로 전진해 왔다. 무질서했던 이전과 달리 아무도 뛰어나오지 않고 느린 트럼펫 가락에 맞춰 옥상옥의 엄호를 받으며 목제 장애물을 가지고 전진했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19.7.3

이 부대는 높은 계급이나 혈통 출신 사람이 아니라, 고지대나 국경지대 출신의 용병 혹은 귀족들에 의해 고용된 경비병, 부유한 평민이나 가난한 하급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조잡한 창이나 방패 따위보다 훨씬 나은 장비를 갖추고 있는데, 자비로 구입한 경우도 있고 고용주로부터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갑옷과 투구, 잘 만든 나무 방패와 단단한 창을 쓰는 법을 잘 압니다. 하지만 쇠와 나무가 진정한 전사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병사들은 잘 무장하기는 했어도 진정한 전문 군인이라 할 수는 없으며, 결국 그들의 역할은 더 빈약한 장비를 가진 보병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적에게 화살을 퍼붓는 아군 궁병대를 엄호하는 방패의 벽이자, 이란의 망치가 적을 후려칠 때까지 그들을 묶어 두는 모루의 역할입니다.




Kamāndarān-i Sassani
(카먼더러니 사사니, 사산 궁병)

"(피리사보라의) 성벽은 세 겹의 병사들로 포위되었으며,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투사 무기로 싸웠다. 그러자 강하고 용감한 방어병력들은 성벽 전체에 모포를 걸어 투사 무기의 위력을 줄이고, 고리버들로 단단히 엮은 뒤 두꺼운 가죽을 씌워 만든 방패로 자신을 보호하며 격렬하게 반격했다. 그들은 마치 몸 전체가 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들의 신체에 딱 맞게 만들어진 갑옷판들이 머리부터 발까지 완전히 가려 그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4.2.9 - 24.2.10

로마인들이 동방의 적을 상대할 때마다 항상 최대한 빨리 접근전을 시도한다는 점을 보면, 그들의 궁병이 가진 위력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서사시들은 항상 갑옷 입은 기병들을 찬양하지만, 그 기병들이 적진을 쓸어버리기 위해서는 쇄도하는 화살의 비로 그들을 충분히 약화시켜야만 합니다. 창병들이 구축한 단단한 방패의 벽과 기병에 의한 측면 공격의 위협으로 궁병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튼튼한 갑옷은 근접전 상황은 물론이요, 치열한 사격전에서 숙련된 궁수를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Paighan-i Adurbadagan
(파이거니 아두르바다간, 아트로파테네 보병)

"파라스마네스는 보병도 강력했는데, 이베리아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은 숲이 빽빽한 지역에 살기 때문에 인내심이 강하고 힘든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 Tacitus, Annals, 6.34

페르시아 보병은 허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사산조가 동원한 보병들 중 로마군을 상대로 그나마 맞설 수 있었던 이들은 대개 변경 지역의 속국에서 동원된 병력일 것이라고 쉽게 단정짓곤 합니다. 이는 페르시아인들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불합리한 편견일 수 있겠지만(예를 들어 갈리아-로마 지역에서 모집된 군단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징집된 군단에 비해 우월한 전투력을 가졌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페르시아-파르티아계 기마 귀족들이나 유목민들이 지배하는 지역에 비하면 아트로파테네, 알바니아, 엘부르즈 등의 산악 지역 보병들이 양과 질 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라 추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 병사들은 중장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큰 타원형 방패를 사용해 쓸만한 중급 보병으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Arteshtarān-i Adurbadagan
(아르테쉬터러니 아두르바다간, 아트로파테네 전사)

"한편 그들은 아르메니아인들과 마찬가지로 보병과 기병, 경무장과 중무장을 모두 갖추고 싸운다." - Strabo, Geographica, 11.4.4

페르시아 보병은 허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사산조가 동원한 보병들 중 로마군을 상대로 그나마 맞설 수 있었던 이들은 대개 변경 지역의 속국에서 동원된 병력일 것이라고 쉽게 단정짓곤 합니다. 이는 페르시아인들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불합리한 편견일 수 있겠지만(예를 들어 갈리아-로마 지역에서 모집된 군단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징집된 군단에 비해 우월한 전투력을 가졌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페르시아-파르티아계 기마 귀족들이나 유목민들이 지배하는 지역에 비하면 아트로파테네, 알바니아, 엘부르즈 등의 산악 지역 보병들이 양과 질 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라 추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로마 군단병들의 강철 같은 군율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이 병사들은 훈련받지 않은 털복숭이 야만인이 아닙니다. 메디아, 알바니아 출신의 이 병사들은 투창과 칼을 사용하는 뛰어난 중보병입니다.

하지만 왕 중의 왕이라 해도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이란과 지상에 내린 신의 그림자를 추종하는 모든 이들의 군주입니다. 하지만 그는 알바니아와 아트로파테네 출신 군벌 장군이 될 수는 없으며, 로마를 따라 '사산조 군단병'을 만들겠다며 이 속국 병사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할 수도 없습니다.




기병
(Savārān, Aswārān)

근동 지역에서 기병의 영광은 항상 밝게 빛났습니다. 전차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기병은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군사 귀족들과 목축 유목민 영주들 치하에서 이 특권은 변함없이 유지되었습니다. 물론 초라해 보이는 보병들은 완전히 제압될 수 없었으며, 기병을 극단적으로 중시한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근동 지역의 전쟁에서도 보병은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슬람 초기 정통 칼리프 시대는 보병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짧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라산과 튀르크의 기병들이 왕좌를 되찾았습니다. 기병들은 화약 무기의 발명과 그 이후의 기술 발전이 있고 나서야 겨우 그 자리를 보병들에게 내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고, 지금 당장은 군단병들이 과거 전성기의 마지막 명맥을 잇는 사이 말 탄 군사귀족들이 점차 전쟁의 핵심으로 대두해 가는 변화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Savaran-i Kurdān
(사버러니 쿠르던, 유목민 기병)

"그들은 원거리에서 용감히 싸우는 데 익숙하며, 그들의 군대가 밀리는 것 같으면 달아나면서 화살을 비처럼 쏘아 적이 추격하는 것을 막는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5.18

암미아누스와 그 이후 저자들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사산조가 운용한 경무장 궁기병의 비율은 이전 파르티아 시대에 비해 상당히 적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졌다'는 것이 곧 비율 자체가 작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파르티아 시대에는 군대의 거의 절대 다수, 어쩌면 90% 가까이가 경무장 궁기병었으므로, 거기서 줄어들었다 해도 여전히 그 숫자는 많을 것입니다. 어쨌든 사산조 역시 궁기병의 가치를 중시하고 계속 이용했으며, 이란 남동부 시스탄의 사카, 박트리아의 쿠샨, 중앙아시아의 히온인, 기타 여러 지역에서 궁기병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사산조가 이들을 항상 좋게만 본 것은 아닙니다. 유목민들은 아리아인들이 이 지역에 처음유입되기 시작할 때부터 살아왔습니다. 이란의 중앙정부가 이 위험한 방랑자들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20세기 초의 일입니다.

군사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만 세금도 내지 않고 툭하면 약탈을 일삼아 세입에는 큰 악영향을 끼치는 이 자들은 비교적 싼 값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효과적인 보조 전력으로 애용되었습니다. 물론 근접전은 일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은 순식간에 도망가거나, 더 심할 경우 순식간에 죽어 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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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페르시아어에서 '쿠르드'는 오늘날의 쿠르드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유목민이나 목축민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쿠르드인들의 조상들 역시 이 같은 이란계 목축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Nēzak-Zēnīg Savaran-i Kurdān
(네자크제니그 사버러니 쿠르던, 창 든 유목민 기병)

"율리아누스는 스스로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며 적이 도망치고 있다고 외쳤다. 그는 병사들에게 추격을 독려하며 직접 전투에 뛰어들었다. 그의 호위병들이 사방에서 그를 불렀는데, 흩어져 도망치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으므로 허술한 집의 지붕이 무너질 것을 대비하는 것처럼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갑자기 기병의 투창이 날아와 팔의 살갗을 긁으며 그의 몸 옆을 찔렀고, 간 아랫부분까지 박혔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5.3.6

별 것 아닌 투창조차 신왕(god-king)을 다치게 만들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기병이 쓰는 무기를 가지고 창기병, 투창기병, 검기병 따위로 나누는 분류법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기병은 창, 활, 칼, 투창, 혹은 기타 다양한 무기들을 형편에 따라 많이 혹은 적게 가지고 다녔습니다. 투창은 아케메네스조 말기 이후로 점차 이란 기병의 주력 무기의 자리에서 밀려났지만, 그 이후에도 중요한 보조 무기로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18세기 페르시아 장군 나디르 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냥, 혹은 전장에서 기병의 투창 실력은 중요한 장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물론 율리아누스가 (투창에 맞아) 죽은 것은 그가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창은 갑옷에 대해 높은 관통력을 가졌기 때문에 궁기병의 시대에도 수요를 유지했습니다. 투창을 던지려면 아무래도 활을 쏠 때보다는 적에게 더 가까이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이 유목민 기병들은 단창과 검을 사용하여 근접전도 상대적으로 잘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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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페르시아어에서 '쿠르드'는 오늘날의 쿠르드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유목민이나 목축민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쿠르드인들의 조상들 역시 이 같은 이란계 목축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실 저 Nezak-zenig(창을 든)이라는 어설픈 표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팔라비 표기를 아는 분이 있다면 기꺼이 바꿀 것입니다. (제작자의 개인적 발언임 - 역주)




Savaran-i Dehghān
(사버러니 데흐건, 하급 귀족 기병)

"(캐터프랙트들에게는) 어렵지만, 궁병들(그 나라 사람들은 그 요람기에서부터 궁술을 매우 중시해 왔다)은 화살촉이 그들의 왼손 끝에 있는 상태에서 활시위가 오른쪽 가슴에 닿을 정도까지 유연한 활을 크게 당겼다. 그리고 매우 숙련된 손놀림으로 화살을 날려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다."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5.12 - 25.13

귀족 사회는 완전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평민에 대한 귀족들의 계급적 공포는 상호 적대적인 귀족들 사이의 갈등 못지않게 큽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위계질서의 환경 속에서, 작은 마을이나 거주지 정도를 영지로 가진 하급 귀족들은 상류 계급의 최말단에 몰려 있는 자들입니다. 이후 호스로 1세의 개혁을 통해 데흐건은 보다 높은 귀족(어저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과 역할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호스로 1세와 그 후계자들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대귀족들에 대한 견제 장치를 얻었습니다. Encyclopedia Iranica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그는 후세의 왕들에게 데흐건들은 곧 형제와 같으니, 계속 그들을 보호한다면 그들 역시 왕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Ṯaʿālebī, Ḡorar, p. 6)"

그러나 그와 같은 데흐건의 전성시대는 현재 게임 시점에서 수백 년 뒤의 일입니다. 기병 부대의 근간을 이루는 이 병사들은 말과 중간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어저던(귀족)과 그리펀버르(중장기병)가 사용하는 무거운 장창 대신 활에 의존합니다. 이란의 비 유목민 출신 기병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들도 한 발 한 발의 위력보다는 빠르게 화살을 퍼붓는 속사를 더 선호합니다. 칼과 철퇴, 방패를 가지고 근접전에서 다른 경무장 보조병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장창을 사용하지 않고 비교적 가벼운 갑옷을 입었으므로 강력한 충격기병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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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Retainer Cavalry"라는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는 적당한 이름이 있다면 기꺼이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사실 호스로 1세의 개혁 이전에 데흐건이 독자적으로 분류될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집단이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Savaran-i Āzādān
(사버러니 어저던, 귀족 기병)

"그에 더해, 모든 부대가 철갑옷을 입었으며, 그들의 몸 전체가 두꺼운 갑옷판으로 덮여 있었는데, 갑옷의 관절 부분이 그들의 사지에 꽉 맞게 되어 있었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5.12

로마인들은 그들의 군단병을 보며 자부심을 느낍니다. 게르마니아의 부족들은 황갈색 머리카락의 전사들을 보면서 그러합니다. 이란에서 그들의 자부심은 순수하고 고귀한 혈통을 가진 귀족 기병입니다. 그는 단순한 궁기병이 아니며, 장창과 칼로 사자보다 용맹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창기병도 아니며, 마치 아후라 마즈다의 손에서 뻗어나오는 광채처럼 화살을 쏘아 날릴 수 있습니다. 그들의 화살은 느리지만 강력한 번개보다는, 쉼 없이 무수하게 쏟아지는 우박과 같습니다. 말에 탔든 타지 않았든, 이들은 로스탐의 호랑이 가죽을 이어받기에 손색이 없는 진정한 전사들입니다.

로마인들의 서술에 따르면 이 기병들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한편 두려워했던 적입니다. 비록 흔해빠진 병사들보다 고귀한 귀족 기사들을 더 높이 평가하는 편견이 내재되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로마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의 전투, 이후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의 전투에서 항상 주목받은 것은 갑옷 입은 기병들의 전투였습니다. 그 결과 궁병들의 중요성이 가장 크게 무시되었지만, 어쨌든 기병들은 항상 근접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심지어 최선봉에 서는 일도 있었습니다.




Savaran-i Grivpanvar
(사버러니 그리펀버르, 중장기병)

"...그리고 사람의 얼굴 형태가 그들의 머리에 딱 맞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그들의 몸 전체가 금속 갑옷으로 가려졌다. 그들에가 날아간 화살이 박히기 위해서는 눈 부분에 뚫어 놓은 작은 구멍, 혹은 숨을 쉬기 위해 코 아래에 뚫어 놓은 부분을 맞춰야만 했다. 그들 중 일부, 장창으로 무장한 자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서 있어서 마치 청동 죔쇠로 고정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25.12 - 25.13

캐터프랙트는 군사사에서 중세 기사들의 선구자라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카우치드 랜스 방식이 가지는 막강한 파괴력은 갖지 못했지만, 대신 육중한 갑옷을 동원해 그들을 말 타고 움직이는 요새처럼 만들었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그들의 돌격, 투사 무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갑옷, 그 이름 그대로 삿대(bargepole)처럼 거대한 장창과 그 장창에 사람 두 명이 꼬치처럼 꿰뚫린 사례 등 두려움에 찬 기록이 많습니다.

그 수많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캐터프랙트는 매우 심각한 약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괴물들의 무지막지한 장비 무게 때문에, 거대한 니사이아 종 군마조차 달리는 속도가 느려지고, 말과 기수가 모두 빨리 지치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여러 차례 마구 휘두르는 대장장이의 망치보다는 치명적인 독침, 외과의사의 수술칼, 암살자의 단검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Pushtighban
(푸쉬티그번, 호위병)

"그리고 아침 햇살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눈길이 닿는 지평선 끝까지 무기의 빛이 번쩍거리고, 갑옷 입은 기병들이 언덕과 계곡에 가득했다. 왕은 남들보다 앞서 전 병력 앞에서 말을 달렸으며, 머리에는 금으로 만들고 보석으로 장식한 양 머리 모양의 왕관을 썼다. 또 여러 나라에서 온 가장 높은 귀족들이 왕의 수행원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 Ammianus Marcellinus, Rerum Gestarum, 19.1.2 - 19.1.3

전사 군주와 군사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들의 경우, 날카로운 검과 사자 같은 용기가 없다면 고귀한 혈통만으로 높은 자리를 완전히 보장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란인들의 상무 정신이 완전히 퇴색하는 것은 수백 년 이후의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어떤 이란인들도 '펜의 민족'이라는 모욕, 곧 '칼의 민족'을 자처하는 늑대 같은 이방인들의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셔한셔, 왕 중의 왕이 황제를 말 타는 발판으로 삼고, 자유를 사랑하고 오만한 아랍인들을 몸소 징벌하여 "어깨 뚫는 자"라는 별명을 얻는 시대입니다. 이처럼 지상에 내린 신의 그림자와 함께 싸우는 이들이 전장에서 천사 같은 용기, 악마 같은 광기를 보여 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왕실 직속 부대로써 이 병사들은 이란, 그리고 왕 중의 왕에게 복속된 모든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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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호위병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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